중세

통치체제의 정비

mikangg 2022. 7. 13. 18:22

□ 중앙 정치 조직

고려의 통치 체제는 성종 때에 마련한 2성 6부제를 토대로 하였다. 고려는 당의 제도를 받아들이면서도 고려의 실정에 맞게 이를 조정하였다. 그리하여 최고 관서로서 중서문하성을 두었고, 그 장관인 문하시중이 국정을 총괄하였다. 그리고 상서성은 실제 정무를 나누어 담당하는 6부를 두고 정책의 집행을 담당하였다. 중추원은 군사 기밀과 왕명의 출납을 담당하였고, 삼사는 송과는 달리, 단순히 화폐와 곡식의 출납에 대한 회계만 맡았다.

 

고려의 독자성을 보여 주는 관청인 도병마사와 식목도감은 재신과 추밀이 함께 모여 회의로 국가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곳이다. 이러한 회의 기구의 존재는 고려 귀족 정치의 특징을 잘 나타내 준다. 한편, 재신과 추밀은 6부를 비롯한 주요 관부의 최고직을 겸하여 중앙의 정치 운영에서 가장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어사대는 정치의 잘잘못을 논하고 관리의 비리를 감찰하는 임무를 맡았다. 어사대의 관원은 중서문하성의 낭사와 함께 대간으로 불렸다. 대간은 비록 직위는 낮았지만, 왕이나 고위 관리의 활동을 지원하거나 제약하여 정치운영에 견제와 균형을 이루었다.

 

고려의 중앙관제도를 나타낸 그림이다
고려의 중앙관제

□ 지방 행정 조직의 정비

지방의 행정 조직도 성종 초부터 정비되기 시작하였다. 전국을 5도와 양계, 경기로 크게 나누고, 그 안에 3경4도호부, 8목을 비롯하여 군⋅현⋅진 등을 설치하였다. 5도는 상설 행정 기관이 없는 일반 행정 단위로서, 안찰사가 파견되어 도내의 지방을 순찰하였다. 도에는 주와 군⋅현이 설치되고 지방관이 파견되었다. 북방의 국경 지대에는 동계⋅북계의 양계를 설치하여 병마사를 파견하고, 국방상의 요충지에는 진을 설치하였는데, 이것은 군사적인 특수 지역이었다.

 

중앙에서 지방관이 직접 파견되는 것은 군⋅현과 진까지였다. 그러나 지방관이 파견되는 주현보다 파견되지 않는 속현이 더 많았다. 속현과 부곡 등 특수 행정 구역은 주현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중앙 정부의 통제를 받고 있었다. 조세나 공물의 징수와 노역 징발 등 실제적인 행정 사무는 향리가 담당하였다.

 

고려의 지방 행정조직을 나타내는 지도이다
고려의 5도 양계

□ 군역제도와 군사조직

고려의 군사 제도는 중앙군과 지방군의 이원 조직으로 구성되었다. 중앙군은 국왕의 친위 부대인 2군과 수도 경비와 국경 방어를 담당하는 6위로 구성되었다. 중앙군은 직업 군인으로 편성되었는데, 이들은 군적에 올라 군인전을 지급받고 그 역은 자손에게 세습되었다.

 

군적에 오르지 못한 일반 농민으로 16세 이상의 장정들은 지방군으로 조직되었다. 지방군은 국경 지방인 양계에 주둔하는 주진군과 5도의 일반 군현에 주둔하는 주현군으로 이루어졌다.

 

□ 관리 등용 제도

고려의 관리는 과거와 음서를 통하여 등용되었다. 과거는 제술업명경업잡업으로 나뉜다. 제술업은 문학적 재능과 정책 등을 시험하고, 명경업은 유교 경전에 대한 이해 능력을 시험하여 문신을 뽑았다. 잡업은 법률, 회계, 지리 등 실용 기술학을 시험하여 기술관을 뽑았다.

 

법제적으로 양인 이상은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으나, 실제로 제술과나 명경과에는 주로 귀족과 향리의 자제가 응시하였다. 백정 농민은 주로 잡과에 응시하였다. 한편, 공신과 종실의 자손, 5품 이상의 고위 관료의 자손 등은 과거를 거치지 않고도 관료가 될 수 있는 음서의 혜택을 받아 관료로서의 지위를 세습하기도 하였다. 이는 고려의 관료 체제가 귀족적 특성을 지녔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