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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4

조선 초기의 대외 관계 □ 명과의 관계 조선은 명과 친선 관계를 유지하여 왕권의 확립과 국가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비록 국초에 요동 지방과 여진 문제 등으로 이해가 엇갈려 양국 사이의 관계가 불편한 때도 있었지만, 태종 때부터 관계가 호전되면서 문화 교류가 활발하였다. 조선에서는 명에 대하여 1년에 수 차의 정기적인 사절을 파견하였고, 그 밖에도 수시로 사절을 파견하였다. 이러한 사절의 파견은 그 목적이 주로 정치적인 것이었으나, 문화의 수입과 물품의 교역도 이를 통하여 행해졌다. 사절의 왕래를 통하여 수출된 것은 종이, 마필, 인삼, 화문석 등이었고, 수입된 것은 견직물, 서적, 약재, 도자기 등이었다. 그러나 조⋅명 간의 무역은 조선 사회에 폐단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즉, 명의 과다한 금⋅은의 요구를 피하기 위하여 .. 2022. 7. 24.
조선의 건국과 제도의 정비 □ 사대부의 등장 고려의 무신란 이후로 귀족 문벌 중심의 폐쇄된 신분 질서가 무너지면서, 신분 변동이 촉진되었다. 노비와 부곡민 가운데서 평민으로 올라가는 부류가 생기고, 평민이나 서리, 향리 중에서 관료(양반)로 진출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그러나, 정치적 실권은 여전히 소수의 권문 세족에게 집중되어 있어서 하층민과 중간층의 신분 상승 노력은 권문 세족과 자주 갈등을 일으켰다. 즉, 권문 세족은 토지와 노비를 더 많이 차지하려 하였고, 힘이 약한 평민은 권문 세족의 노비가 되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득이 있어 스스로 그들에게 투탁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평민 중에는 노비와 비슷한 천민으로 떨어지는 부류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신분 변동의 추세는 원의 간섭 시대에도 계속되었다. 원에서 새로운 학술과 종교를 배.. 2022. 7. 22.
통치 체제의 정비 □ 중앙 정치 체제와 지방 행정 조직 조선의 중앙 정치 체제는 경국대전으로 법제화되었다. 관리는 문반과 무반의 양반으로 구성되었고, 30등급(18품 30계)으로 나뉘었다. 조선 시대의 관직은 중앙 관직인 경관직과 지방 관직인 외관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경관직은 국정을 총괄하는 의정부와 그 아래에 왕의 명령을 집행하는 행정 기관인 6조를 중심으로 편성되었다. 6조 아래에는 여러 관청이 소속되어 업무를 나누어 맡음으로써 행정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었다. 한편, 의정부와 6조의 고관이 중요 정책 회의에 참여하거나 경연에서 정책을 협의함으로써 각 관서 사이의 업무를 조정하고 통일적인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다.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3사는 관리의 비리를 감찰하고, 정사를 비판하며, 문필 활동을 하.. 2022. 7. 20.
조선의 성립 □ 근세의 세계 14세기 후반, 중국에서는 명이 건국되어 전통적인 한문화가 회복되었다. 명대에는 강력한 전제 황권이 확립되고 서민 문화가 발전하였다. 명은 15세기 초 대외적으로 팽창하여 인도양과 아프리카 동해안까지 국위를 떨쳤다. 이 때부터 중국인이 동남 아시아 지역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후 명은 북쪽으로는 몽골족의 침입과 남쪽으로는 왜구의 약탈에 시달리게 되었다. 더구나 16세기 말에는 명의 국력이 더욱 쇠약해졌고, 결국 17세기 중엽에 만주에서 일어난 청에게 중국의 지배권을 넘겨주었다. 서아시아와 남아시아에서는 이슬람 국가들이 여전히 번성하였다. 오스만 제국은 서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의 3대륙에 걸친 제국으로 발전하였고, 중앙 아시아에서 건국된 티무르 제국과 이란 지방의 사파.. 2022. 7.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