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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5

조선 초기의 대외 관계 □ 명과의 관계 조선은 명과 친선 관계를 유지하여 왕권의 확립과 국가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비록 국초에 요동 지방과 여진 문제 등으로 이해가 엇갈려 양국 사이의 관계가 불편한 때도 있었지만, 태종 때부터 관계가 호전되면서 문화 교류가 활발하였다. 조선에서는 명에 대하여 1년에 수 차의 정기적인 사절을 파견하였고, 그 밖에도 수시로 사절을 파견하였다. 이러한 사절의 파견은 그 목적이 주로 정치적인 것이었으나, 문화의 수입과 물품의 교역도 이를 통하여 행해졌다. 사절의 왕래를 통하여 수출된 것은 종이, 마필, 인삼, 화문석 등이었고, 수입된 것은 견직물, 서적, 약재, 도자기 등이었다. 그러나 조⋅명 간의 무역은 조선 사회에 폐단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즉, 명의 과다한 금⋅은의 요구를 피하기 위하여 .. 2022. 7. 24.
사림의 대두와 붕당 정치 □ 사림의 대두 조선의 문물 제도가 정비된 성종 때를 전후하여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들을 사림이라고 불렀다. 사림들은 정치 무대에 등장하면서, 훈구 세력과 대립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새로운 정치 명분과 폭넓은 지지 세력, 사림 스스로의 사회⋅경제적 기반을 통해서 나름대로의 정치력을 발휘하였다. 영남, 기호 지방에 근거하여 성장한 이들 사림은 성리학의 철학과 문학, 사학을 연구하면서 독자적인 학문 영역을 개척하였다. 그리고 훈구 세력의 사장적 학풍과는 달리 경학을 중시하고, 인간의 심성을 연구하는 성리학을 학문의 주류로 삼았다. 사림은 성리학 이외의 학문과 사상을 이단으로 배격하고, 중앙 집권 체제보다는 향촌 자치를 내세웠다. 그리고 사림은 도덕과 의리를 바탕으로 하는 왕도 정치를.. 2022. 7. 23.
조선의 건국과 제도의 정비 □ 사대부의 등장 고려의 무신란 이후로 귀족 문벌 중심의 폐쇄된 신분 질서가 무너지면서, 신분 변동이 촉진되었다. 노비와 부곡민 가운데서 평민으로 올라가는 부류가 생기고, 평민이나 서리, 향리 중에서 관료(양반)로 진출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그러나, 정치적 실권은 여전히 소수의 권문 세족에게 집중되어 있어서 하층민과 중간층의 신분 상승 노력은 권문 세족과 자주 갈등을 일으켰다. 즉, 권문 세족은 토지와 노비를 더 많이 차지하려 하였고, 힘이 약한 평민은 권문 세족의 노비가 되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득이 있어 스스로 그들에게 투탁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평민 중에는 노비와 비슷한 천민으로 떨어지는 부류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신분 변동의 추세는 원의 간섭 시대에도 계속되었다. 원에서 새로운 학술과 종교를 배.. 2022. 7. 22.
통치 체제의 정비 □ 중앙 정치 체제와 지방 행정 조직 조선의 중앙 정치 체제는 경국대전으로 법제화되었다. 관리는 문반과 무반의 양반으로 구성되었고, 30등급(18품 30계)으로 나뉘었다. 조선 시대의 관직은 중앙 관직인 경관직과 지방 관직인 외관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경관직은 국정을 총괄하는 의정부와 그 아래에 왕의 명령을 집행하는 행정 기관인 6조를 중심으로 편성되었다. 6조 아래에는 여러 관청이 소속되어 업무를 나누어 맡음으로써 행정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었다. 한편, 의정부와 6조의 고관이 중요 정책 회의에 참여하거나 경연에서 정책을 협의함으로써 각 관서 사이의 업무를 조정하고 통일적인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다.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3사는 관리의 비리를 감찰하고, 정사를 비판하며, 문필 활동을 하.. 2022. 7.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