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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2

거북선 제작자 나대용 □ 나대용의 업적 나대용은 조선 최고의 선박기술자로 거북선을 개발하였는데, 탁월한 전공을 세웠으며 속도가 느린 판옥선을 개량하여 해추선 등을 고안하였다. 나대용은 해전에서 기술적 우위를 가지게 한 핵심 기술자였다. 나대용에 대한 기록은 《난중일기》, 《조선왕조실록》등에 전해져 내려옴 □ 나대용의 생애 나대용장군 1556년 첨추(僉樞) 라항(羅亢)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래 문장이 뛰어나 문인이 되려 하였으나, 1583년(선조 16년) 훈련원 별시에 병과 급제하여 훈련원봉사를 지냈다. 1591년 전라좌수사 이순신 휘하에 들어가 병선 연구에 힘썼는데 특히 거북선을 건조하는 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 1592년 옥포해전에서 유군장 직을 맡아, 적의 대선 두 척을 격파하고, 사천해전에서는 분전 끝에 총탄을 맞아 부.. 2022. 8. 21.
원균 □ 직위 같은 선무공신 1등이라도 권율과 이순신의 경우 정1품 대광보국숭록대부의 품계를 받은 반면 원균의 경우는 종1품 숭록대부의 품계를 받았다. 대광보국숭록대부와 숭록대부의 사이에 정1품 보국숭록대부가 있다. 당시 권율과 이순신에게 각각 영의정과 좌의정 및 부원군의 작호가 추증된 반면 원균은 좌찬성 겸 판의금부사, 군의 작호가 추증되었다. 국왕 선조에 의해 어거지로 선무공신 1등이 되었는데도 종1품에 머무른 점을 보면 조정에서도 원균의 평가가 좋지 못했음을 단면적으로 드러낸다 할 수 있다. 정치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간단하다. 선조는 올려주고 싶은데 이에 호응하는 신하가 1명도 없고 죄다 반대했기 때문인데 그래도 임금이 하자는 거니까 마지 못해 올릴 수 있는 최소한의 추증만 올린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2022. 8.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