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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거북선 제작자 나대용

by mikangg 2022. 8. 21.

□ 나대용의 업적

나대용은 조선 최고의 선박기술자로 거북선을 개발하였는데, 탁월한 전공을 세웠으며 속도가 느린 판옥선을 개량하여 해추선 등을 고안하였다. 나대용은 해전에서 기술적 우위를 가지게 한 핵심 기술자였다. 나대용에 대한 기록은 《난중일기》, 《조선왕조실록》등에 전해져 내려옴

 

나대용의 사진이다.
나대용

 

□ 나대용의 생애

나대용장군 1556년 첨추(僉樞) 라항(羅亢)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래 문장이 뛰어나 문인이 되려 하였으나, 1583년(선조 16년) 훈련원 별시에 병과 급제하여 훈련원봉사를 지냈다. 1591년 전라좌수사 이순신 휘하에 들어가 병선 연구에 힘썼는데 특히 거북선을 건조하는 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 1592년 옥포해전에서 유군장 직을 맡아, 적의 대선 두 척을 격파하고, 사천해전에서는 분전 끝에 총탄을 맞아 부상을 입고, 한산도 해전에서도 부상을 당하였다. 명량해전과 1598년 노량해전에도 참전하여 큰 공을 세웠다. 그는 이와 같은 공을 인정받아, 1594년 강진현감으로 제수되었고, 이어 금구, 능성, 고성의 현감을 역임하였다. 1606년 12월 24일 나대용은 선조에게 상소를 올려 창선을 개발하였다고 고한다. 전투형 거북선과 탑승인원을 많이 필요한 판옥선의 단점을 보완하여, 칼과 창을 빽빽이 꽂아 창선을 건조한다. 125명이 필요한 판옥선에 비해 격군 42명으로도 배의 운용이 가능하며, 군 인력을 늘이지 않고도 배를 두 배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유용한 장점이 있었다.[1] 1610년 광해군 2년에는 남해현령에 제수되어 해추선(海鰍船)이라는 쾌속선을 고안하여 건조하였고, 1611년에는 경기수군을 관할하는 교동수사에 제수되었으나 전쟁에서 입은 부상이 재발하여 부임하지 못하고 1612년 1월 29일에 사망함

 

□ 나대용의 업적 및 기타

거북선을 만든 과학자이자 발명가다. 거북선과 판옥선의 단점을 보완해 칼과 창을 빽빽이 꽂을 수 있는 창선도 만들었다. 해추선이라는 쾌속정까지 만들어낸 조선 기술자였다. 나대용은 임진왜란에도 참전해 큰 공을 세웠다. 사천해전에서는 탄환을 맞았다는 사실이 난중일기에 기록돼 있다.

 

우리 정부도 나대용의 업적을 기려 해군이 운용하고 있는 잠수함 한 선단의 이름을 나대용함으로 붙였다. 나대용함은 최첨단의 잠수함이다. 1200t급에 길이 56m, 폭 6m에 이른다. 물속에서 음향까지 탐지해 표적을 찾아내고 추적까지 하는 잠수함이다. 유도탄 미사일을 쏴 수십 마일 떨어진 표적을 명중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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